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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인사말

불기2566년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스님


삼세동시三世同時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미운 일은 미운 대로 고운 일은 고운 대로 모든 일들이 다 저마다의 자리로 수렴되고 우리는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희망을 줍니다. 어제의 못다한 아쉬움이나 후 회를 갈무리하고 더 나은 내일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출발선을 마련해주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인간관계의 변화, 사회적 성공과 성취 등 사회 일반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계율의 수지, 지난 잘못의 참 회와 같은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시작과 끝’, ‘어제와 내일’은 후회를 잠재우고 희망을 일깨우는 위로의 방 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를 조금만 공부해보아도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데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하여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째서 불교는 시작과 끝,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 을 설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다가 오지 않은 미래보다는 ‘지금 여기’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과응 보因果應報라는 말로 과거에 지은 업과 그 업에 따른 미래의 과보로써 신행 윤리의 틀을 세우고 있지만, 이 또한 ‘오늘’을 잘 살아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禪불교를 크게 일으킨 원오극근圜悟克勤선사는 「벽암록碧巖錄」에서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순간순간 어제를 남기고, 찰나찰나 내일을 맛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오늘의 자취이고,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오늘이기에 ‘오늘’이라고 따로 부를 것이 없는 온전한 ‘오늘 지금 여기’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只今’은 어제를 재 구성하는 동시에 내일을 만들어 갑니다.

올바르지 못한 ‘오늘’을 살고 있는 이에게 있어 ‘어제’는 오늘의 고통을 만든 밑바탕일 뿐이 며, 그의 ‘내일’은 행복의 가능성이 낮은 미래가 되지만, 바르고 진실한 ‘오늘’을 살고 있는 이에 게 있어서 ‘어제’는 행복한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고 ‘내일’은 희망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 지는 것입니다.

만산의 숲을 일깨우는 호랑이의 포효와 함께 ‘오늘’이 밝았습니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三世가 동시同時로서 어제도 내일도 오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믿 고, 나날이 새해를 맞이하고 걸음걸음 행복으로 진일보하는 불자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울러 각 가정마다 부처님의 가피가 원단元旦의 햇빛처럼 밝게 빛나길 기원드립니다.
불기2566(2022)년 1월
영축총림 주지 이산 현문 합장